
"막상 쓰려니 빈 화면만 깜빡거려요. 50페이지를 어떻게 다 채우죠?"
지난 글에 달린 질문이자, 사실 매주 책상 앞에서 제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감정입니다.
안녕하세요, 자바파커입니다. 「나만의 책만들기」 8주 챌린지 4회차입니다. #1에서 도구·폴더를 잡고, #2에서 콘셉트를, #3에서 차례(outline)까지 세웠습니다. 이제 그 빈 차례 칸을 글로 채울 차례인데 — 오늘은 그 첫 삽을 "새로 쓰기"가 아니라 "모으기"로 뜨는 이야기입니다.
결론부터 말씀드리면 — 책의 첫 자료는 새로 쓰는 게 아니라, 이미 써둔 것을 모으는 데서 나옵니다. 여러분은 생각보다 많은 글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. 블로그 글, 메모, 누군가에게 보낸 긴 답장, SNS에 끄적인 생각. 흩어져 있을 뿐입니다. 오늘 할 일은 그것들을 한곳에 모으고, 어느 챕터의 재료인지 표시하는 것입니다.
왜 "새로 쓰기"보다 "모으기"가 먼저인가
빈 화면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합니다. 0에서 1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. 그런데 책 한 권의 대부분은 0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. 여러분이 어떤 주제로 책을 쓰기로 했다는 건, 이미 그 주제를 여러 번 말하고 써봤다는 뜻이거든요.
저의 경우 이 「나만의 책만들기」의 절반은 이미 블로그에 흩어져 있던 글입니다.
- 작업 폴더 세팅 → 예전 "개발 환경" 글
- 빌드 인 퍼블릭 운영 → 매주 쓰던 위클리 일지
- 자동화 워크플로우 → 30분 만에 만든 자동화 사례 글
새로 쓴 게 아니라, 이미 쓴 것을 책의 언어로 옮긴 것입니다. "모으기"를 먼저 하면 빈 화면이 반쯤 찬 화면으로 바뀝니다. 1에서 2를 만드는 일은 0에서 1보다 훨씬 쉽습니다.
핵심: 수집은 창작보다 심리적 저항이 낮다. 가장 막막한 첫 주를, 가장 쉬운 작업으로 시작하는 전략입니다.
발췌와 재구성을 분리하라 — 폴더 두 개의 원칙
자료 모으기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먼저 말씀드립니다. "가져오는 일"과 "고쳐 쓰는 일"을 절대 한 번에 하지 마세요. 두 작업은 머리를 쓰는 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. 섞으면 둘 다 느려집니다.
그래서 자료 폴더를 둘로 나눕니다.
book/drafts/
├── from-blog/ # 1단계: 발췌 — 원본을 그대로 복사 (손대지 않음)
└── reworked/ # 2단계: 재구성 — 책 톤으로 다시 쓰는 작업장1단계 — 발췌(extract): 원본 그대로, 출처만 남긴다
발췌는 편집하지 않습니다. 원본 글을 그대로 복사해 오고, 맨 위에 출처와 가져온 날짜만 주석으로 답니다. 이 단계의 목적은 단 하나 — "이 챕터에 쓸 재료가 여기 있다"는 사실을 확보하는 것입니다.
왜 안 고치냐고요? 발췌하면서 문장을 다듬기 시작하면, 자료 10개를 모으는 데 하루가 다 갑니다. 모으기는 빠르게, 양으로 가야 합니다. 다듬기는 그다음입니다.
2단계 — 재구성(rework): 책의 언어로 다시 쓴다
reworked/에서 비로소 책 톤으로 고칩니다. 블로그 글은 "그때 그 순간"의 호흡이고, 책은 "처음 보는 독자"의 호흡입니다. 시점을 바꾸고, 앞뒤 챕터와 연결하고, 블로그 특유의 시의성("지난주에")을 걷어냅니다. 이 작업은 **#5(챕터 쓰기)**에서 본격적으로 다룹니다.
왜 굳이 폴더를 나누나
- 원본 보존 — 재구성하다 길을 잃어도
from-blog/의 원본은 그대로 있습니다. 언제든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. - 진척이 눈에 보인다 —
from-blog/에 파일이 쌓이는 것만으로 "자료가 모이고 있다"는 실감이 납니다. 빌드 인 퍼블릭의 동력입니다. - 출처 추적 — 나중에 부록 D(발행 글 링크 모음)를 만들 때, 어떤 챕터가 어느 원본에서 왔는지 한눈에 보입니다.
자료는 어디서 모으나 — 네 곳
빈손이라고 느껴져도, 보통 이 네 곳에 재료가 숨어 있습니다.
- 내 블로그·SNS 글 — 가장 큰 광맥. 이미 다듬어진 문장입니다.
- 메모·노트앱 — Notion, 메모장, 카톡 "나에게 보내기". 정제는 안 됐어도 생각의 원석입니다.
- 남에게 보낸 긴 답변 — 질문에 진심으로 답한 글은 이미 "독자를 향한" 글입니다. 책 본문에 가장 가깝습니다.
- 외부 자료·인용 — 공식 문서, 통계, 인용하고 싶은 책. 단, 출처를 반드시
research/references.md에 기록하세요.
#3에서 만든 outline의 "발췌 후보" 칸을 기억하시나요? 지금이 그 칸을 채울 때입니다. 모은 자료를 챕터 번호에 하나씩 붙여 나갑니다.
실습 1 (개발자) — mirror-from-blog.sh 한 줄로 발췌
개발자라면 발췌를 손으로 복사·붙여넣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. 원본 경로만 넘기면 출처 주석을 달아 from-blog/에 떨어뜨리는 스크립트 하나면 됩니다.
# 블로그 글 한 편을 책 작업 폴더로 발췌
./scripts/mirror-from-blog.sh contents/posts/claude-code/qa-automation-guide/index.md
# 출력: book/drafts/from-blog/qa-automation-guide-extract.md
# - 상단에 "출처 경로 · 미러 시각" 주석 자동 추가
# - 본문은 원본 그대로 (편집 없음)스크립트가 하는 일은 세 가지뿐입니다 — ① 원본을 읽고, ② 맨 위에 출처·시각 주석을 붙이고, ③ from-blog/에 복사. 원본은 절대 건드리지 않습니다. "발췌는 편집하지 않는다"는 원칙이 스크립트로 강제되는 셈입니다.
스크립트 전문은 책 부록 C에 그대로 싣습니다. 직접 만들고 싶다면 Claude에게 "원본 마크다운을 출처 주석과 함께 다른 폴더로 복사하는 bash 스크립트"를 요청하면 5분이면 나옵니다.
실습 2 (비개발자) — 폴더 두 개와 "출처 한 줄"
스크립트가 없어도 원칙은 똑같습니다. 손으로 하면 됩니다.
- 작업 폴더에 하위 폴더 두 개를 만듭니다 —
발췌,재구성(영어로from-blog,reworked라도 좋습니다). - 책에 쓸 만한 글을 찾으면 그대로 복사해
발췌폴더에 새 문서로 붙여넣습니다. - 문서 맨 위 한 줄에 출처를 적습니다 —
출처: 2025-11-03 블로그 "○○○" / 가져온 날: 오늘. - 끝. 다듬고 싶은 충동이 들어도 참으세요. 다듬기는
재구성폴더에서, 다음 주에.
Notion이라면 데이터베이스 한 개에 "원문 / 출처 / 매핑 챕터 / 상태(발췌·재구성·완료)" 열을 두는 것으로 충분합니다.
모으기의 함정 — 이것만 피하세요
❌ 1. 원본을 고치기 시작한다
발췌하다 "이 문장 어색한데" 하고 손대는 순간, 모으기가 글쓰기로 바뀌고 속도가 죽습니다. 발췌 폴더에선 읽기만, 쓰기는 재구성 폴더에서.
❌ 2. 출처를 안 남긴다
3주 뒤 "이 단락 어디서 가져왔지?"가 반드시 옵니다. 출처 한 줄이 부록 D와 인용 표기를 살립니다. 가져올 때 바로 적으세요. 나중은 없습니다.
❌ 3. 모으기만 하고 안 쓴다
수집은 중독성이 있습니다. 자료가 20개 쌓이면 "더 모아야지"가 아니라 **"이제 충분하다"**가 정답입니다. 한 챕터에 재료 2~3개면 차고 넘칩니다.
다음 주 예고 (#5 — 챕터 쓰기)
자료를 모았으니, 다음 주는 드디어 reworked/에서 한 챕터를 실제로 써내는 단계입니다. 발췌한 블로그 글이 어떻게 "책의 한 장"으로 바뀌는지 — 시점 전환, 챕터 간 연결, 그리고 빌드 인 퍼블릭이 글쓰기를 끌고 가는 힘을 직접 보여드립니다. 이번 시리즈를 매주 쓰는 일 자체가 그 사례가 됩니다.
FAQ
Q1. 모을 글이 정말 하나도 없으면요?
그럼 "쓴 글"이 아니라 "한 말"을 모으세요. 누군가에게 이 주제를 설명했던 카톡, 댓글, 음성 메모를 텍스트로 옮기면 그게 1차 자료입니다. 완전한 백지에서 시작하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.
Q2. 남의 글·자료를 발췌해도 되나요?
인용은 되고, 복제는 안 됩니다. 남의 글은 "출처를 밝힌 짧은 인용"까지만. research/references.md에 URL과 인용 범위를 기록하고, 본문에선 내 언어로 요약하세요. 통째로 옮기는 건 발췌가 아니라 표절입니다.
Q3. 발췌와 재구성을 꼭 따로 해야 하나요? 한 번에 하면 안 되나요?
나눌수록 빨라집니다. 한 번에 하면 글 한 편당 30분씩 걸려 첫 주에 지칩니다. 발췌는 양으로 빠르게(편당 2분), 재구성은 질로 천천히(편당 30분)로 분리하면 진척이 훨씬 잘 보입니다.
Q4. 블로그 글을 책에 그대로 써도 SEO에 문제 없나요?
책(PDF/EPUB)과 블로그는 검색 인덱스가 분리되어 중복 문제는 거의 없습니다. 다만 책에 실을 땐 어차피 reworked/에서 톤을 바꾸므로 문장이 달라집니다. 같은 내용을 다른 매체에 맞게 두 번 쓰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.
마무리
오늘 두 가지만 하시면 됩니다.
- ✅ 작업 폴더에
from-blog·reworked(발췌·재구성) 폴더 두 개 만들기 - ✅ 책에 쓸 글 3개를 발췌 폴더로 가져오고, 각 문서 맨 위에 출처 한 줄 적기
딱 3개면 됩니다. 완벽한 자료가 아니라, "모으기 근육"을 한 번 써보는 것이 이번 주의 목표입니다.
여러분 책의 첫 자료는 어디에 숨어 있나요? 블로그? 오래된 메모? 누군가에게 보낸 긴 답장?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주 #5에서 "이 자료를 한 챕터로 만든다면" 사례로 함께 풀어보겠습니다.
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. 자바파커였습니다.